<제14화> 사랑과 죽음의 대륙-중원(中原) (29)
기사입력 1996년 03월 07일 14시 42분
핑….
파공성은 미세 했지만 그 위력은 상상을 불허했다.
타-탕 하는 굉음이 어둠의 장막을 꿰뚫는 순간 이백근의 운두도가 동강나 부러졌다. 그 충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괴인의 어깨 견정혈(肩井穴)을 맹타 했다.
"억…."
흑의장포 괴인은 비참한 신음을 토하며 그대로 폭삭 주저 앉고 말았다. 그의 눈빛은 순식간에 공포로 물들었다.
경악의 극치를 경험한 모습.
황보백령이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목엽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오랜 연인처럼 다정하게 목엽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속삭였다.
"이제 우리는 어쩌지요?"
목엽이 무사들을 살상하지 않은 건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서였지만 사실 그 정도로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목엽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이제 이 곳을 떠나겠소."
황보백령은 목엽을 정시했다.
"이 사찰에서 떠난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나에게서 떠난다는 뜻인가요?"
"그 두가지 모두요."
흠칫하는 황보백령.
"당신은 기어코 나에게서 떠날 셈이군요."
"이미 말했듯이 우리의 계약은 이제 끝났소. 그대도 타르무와 더 이상 충돌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이곳을 떠나는 게 좋을 것이오."
황보백령은 샐쭉해진 얼굴로 말을 받았다.
"충고 감사하군요."
"이들은 타르무에게 보고할 것이니 날 추격할 것이오. 소저는 상관없소."
중상을 입은 흑의장포 괴인들은 목엽의 말을 들으며 숨을 몰아쉬고 있을 뿐이었다.
황보백령이 입술을 잘근 씹고 있었다.
이때 목엽은 발길을 돌려서 산문 쪽으로 서서히 걸어갔다. 아무 미련없이 황보백령에게서 떠나가는 것이었다.
무정한 사람.
어찌 저렇게도 냉정할 수 있단 말인가? 황보백령은 부모의 무덤 앞에서 가장 차갑고 무서운 복수의 원귀(寃鬼)가 되고자 맹세했었다.
하지만 이소야는 자신 보다도 훨씬 더 냉정했다. 그것은 이상하게 서러웠다. 본래부터 그와는 오래 함께 할 수 없음을 알고 있던 황보백령이었다.
그녀는 멀어지는 목엽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좋아요! 당신 말대로 우리의 거래는 끝났으니까 당신 가고 싶은대로 가요!"
대꾸도 없었다.
그는 사라지는 것이 목적인양 묵묵히 어둠속으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희미해지고 있는 뒷모습. 황보백령은 최후의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시선을 떼지 않는다.
문득 그녀의 눈동자에 작은 이슬이 맺혀서 반짝 빛났다.
목엽과의 지난 일 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알려 주었다. 아니, 전부를 보여 주었다. 슬픔은 달빛처럼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