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요시사회 > 일포스티노
기사입력 1996년 03월 06일 15시 53분
## 메마른 사회 적시는 잔잔한 감동
시실리 조그만 마을극장의 영사기사와 영화를 좋아하는 꼬마와의 감동적인 우정을 그린 `시네마 천국'의 감동을 또한번 만난다.
`일 포스티노'(IL POSTINO).
이번에는 세계적인 시인이 작은 어촌의
집배원과 나누는 따뜻한 우정으로 바뀌었다.
수상작가이며 의 저항시인인 파블로 네루다가
망명시절 겪었던 자그마한 실화가 영화의 토대.
고기잡이일을 마다하고 빈둥거리던 노총각 마리오(마시모 트로이지)는
에서 망명온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으로 취직하면서 새로운 삶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물도 안나오는 어촌의 생활을 비관해오던 마리오는 파블로에게 폭주하는
우편물의 대부분이 여성팬들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고, 자신도 시와 은유를
배우고 싶어한다.
파블로의 로맨틱한 시를 인용해가면서 마을주점의 아리따운 아가씨
베아트리체(마리아 그라지아 쿠치노타)의 환심을 사려고도 한다.
사랑의 열병에 걸린 마리오. 마리오는 파블로에게 생떼를 쓴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촌무지랭이인데, 파블로의 시와 은유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 자신의 열병을 책임지라고.
파블로의 "왜 남의 시를 함부로 인용하느냐"는 항변에 마리오는 어눌한
어조로 "시란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 아닌가요"라며 머리를 긁적인다.
위대한 시인은 마리오의 이 말에 무릎을 친다.
고국을 떠나 살아야만 하는 망명시인은 새삼스럽게 순박한 마리오를
통해 순수의 아름다움을 본다.
오로지 베아트리체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시에 몰두했던 마리오도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나오는 영혼의 떨림을 느끼게 된다.
망명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갔다가 몇년 후 다시 섬마을을 찾은 파블로는
마리오를 꼭닮은 소년을 만난다.
그리고 베아트리체로부터 마리오가 파블로에게 바치는 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는다.
노시인의 눈엔 눈물이 고인다.
특별하게 극적인 드라마를 펼쳐내는 것도 아니지만 두 사람의 우정은
메마른 요즘 사람의 가슴에 훈훈함을 안겨준다.
달 25일에 발표될 제68회 에 외국어영화로는
지난 73년 이후 처음으로 최우수작품상및 5개부문에 오른 이유도 얼핏 느껴진다.
특히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마리오역의 마시모 트로이지가 촬영을 끝내고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감독 마이클 래포드 연출.
< 이창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