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유리의 밥상인터뷰] "농구대잔치? 돌아가면 안돼요" 문경은 감독의 비하인드썰

    기사입력 2018-05-17 14:11:49 | 최종수정 2018-05-25 07:00:34

    스포츠조선과 인터뷰하는 문경은 감독.

    서울 SK와 원주 DB의 2017-2018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6차전 경기가 18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렸다.
    SK가 승리하며 챔프전 전적 4승 2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선수들에게 행가레를 받는 문경은 감독의 모습.
    잠실학생체=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8.04.18/

    어제 일 같은데, 벌써 한달이 훌쩍 지났다.

    남자 프로농구 서울 SK 나이츠 문경은 감독(47)은 "우승의 달콤함이 딱 하루가더라"며 웃었다. 우승 다음날부터 곧바로 다음 시즌 구상에 들어갔다. FA 계약은 매듭을 지었고, 외국인 선수를 고민하고 있다. 지난 시즌으로 계약이 만료된 문 감독은 재계약이 확정적이다. 최고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연세대 출신 농구대잔치 스타에서 가장 빨리 성공한 감독으로 자리잡기까지. '꽃길'만 걸었을 것 같은 '람보 슈터'의 농구 인생이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세심하게 선수들을 살피는 노력파 지도자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SK 체육관에서 최근 문 감독을 만났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즐길 줄 아는 문 감독과 체육관 인근 메밀국수 맛집을 찾았다. '잘 나갔던' 대학 시절부터 대학 새내기 외동딸 이야기까지. 밥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그는 솔직하고, 유쾌했다.

    ◇"본보기가 되고싶은 욕심 있다"

    -우승의 달콤함이 얼마나 갔나.

    그날로 끝났다. 울고 나니까 현실이더라.(웃음) 우승 확정 후 시원하게 울었다.

    -재계약 소식이 아직 없다. 최고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욕심 없다. 구단이 잘 해줄거라 믿는다.

    -이전까지 SK는 감독들의 무덤이나 마찬가지였다.

    배움의 연속인 것 같다. 우승을 해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한다. 우승 헹가래 받고 다음날 리카르도 라틀리프(라건아) 드래프트에 참가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했던 것을 보면 더 그렇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 중에 이만큼 성공한 감독이 있었나.

    허 재 감독님. 농구대잔치와 프로를 모두 경험하고 감독까지 한 선배는 허 재 감독님 정도인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히 성공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자부심을 갖고 잘 해야겠다는 책임감은 있다. 감독이 처음 됐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잘 됐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10명 중에 1,2명? 그것도 다 내 측근이었다.(웃음) 나머지는 다 너무 쉬운 길을 걷는다고 했다. 그런데 감독이 된 후에 조금씩 성적을 내니까 구단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 이상민 김영만 같은 후배들이 감독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친구들과 함께 선후배로 선수 생활을 했고, 대표팀에서 주장도 맡았다. 물론 성적을 못내 재계약을 놓고 전전긍긍했다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선배들의 업적을 욕심내는 것보다 함께 농구했던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싶다. 그게 진심이다.

    1999년 삼성 시절 문경은(왼쪽). 스포츠조선DB

    ◇농구대잔치로 돌아가면? 안돼죠

    -1990년대를 다룬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깜짝 출연해 화제가 됐었다. 어색한 연기까지.

    사실 속아서 출연했다.(웃음) 그때 한선교 (KBL)총재님이 직접 전화를 주셨다. "농구 인기를 살리기 위해 고생 한번만 해줘라. 이상민 서장훈도 찍는단다"고 말씀하셔서 촬영장에 갔다. 그런데 이상민 서장훈은 안오고 우지원 김 훈이 와 있더라.(웃음) 촬영장 분위기도 낯설고 그래서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어떻게 찍게 됐다. 영상 35도 정도 되는 한여름이었는데, 덥고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반응이 좋았다.

    하루 고생하고 반응은 좋았다. 왜냐면 이제는 마트에나 가야 아주머니들이 "문경은 선수, 더 먹어요"하고 먹을 것 하나 더 주시지, 다른데 가면 모른다. 근데 드라마에 나오고 난 후에 한동안 젊은 친구들이 "'응사' 아저씨네?"라고 하더라.

    -당시 여성팬 인기가 엄청났는데.

    대학 2학년 초까지는 인기가 제법.(웃음) 그 무렵 농구대잔치 2차 대회를 대구에서 했는데, 체육관이 꽉 찼다. 내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가 많이 보여 감동 받았다. 그런데 1년 후 이상민이 입학하더니 반 이상을 갉아먹었고, 또 1년 후에 우지원이 들어오더니 인기가 반의 반으로 줄더라.(웃음) 고려대 전희철 현주엽이 인기를 가져갔다고 생각한다.(웃음) 그래서 인기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남성팬의 지지를 받기 위해 덩크슛 연습에 매진했다. 이상민 우지원은 덩크슛 못하니까.(웃음)

    -이상민 감독이 이끄는 삼성과 SK는 지난 시즌부터 'S 더비'라는 라이벌 매치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큰 감흥이 없었는데, 상민이가 말로 도전장을 툭 내밀더라. "6승을 하고싶은데, 예의상 1승 정도 줄 수 있다"며 건드리니까.(웃음) 경기 중에도 묘하게 신경전을 벌이게 되더라. 또 시즌 마지막 경기에 예전 유니폼 색깔로 서로 빨간색, 파란색을 바꿔 입었는데 그걸 보니 라이벌 생각이 확 들더라.

    -'언제적' 농구대잔치냐는 얘기도 많다.

    사실 그때로 되돌아가면 안된다. 갈 수도 없다. 그때는 할 게 없었다. 텔레비전 채널도 3개 밖에 없었고, 주말에 극장 가는 게 다였다. 요즘은 할 게 많으니까 같을 수가 없다.

    -그만큼 농구 인기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어딜가도 "농구 인기가 예전만 못하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감독이다보니 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한계가 있다. 국제 대회 경쟁력? 절대 아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따도, 경기장 찾아오는 사람은 다르다. 선수들도 미디어 노출은 해야한다고 본다. 나 역시 선수 시절 비시즌 때 방송 나가고, 시즌 때 잠깐 부진하면 '운동 안하고 방송국 나들이나 다닌다'는 비난을 들었다. 예전 감독님들도 그런 걸 싫어하셨다. 그런데 이제는 방송국에서 안불러서 못나간다. 우리팀 김선형과 함께 명동에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더 많이 알아본다. 그러니 더 적극적으로 출연 기회도 만들고, 계속해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려야 한다. 만약 내가 선형이랑 '배틀트립' 같은 프로에 나가면, 어린 아이들이 한두명이라도 더 알아보고 그중 몇몇이 실제 농구장에 올 수도 있지 않겠나. 농구를 열심히, 잘하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팬들에게 더 다가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너희 돈 벌려고 프로 하는 거 아니야?"

    -곧바로 시즌 준비에 돌입했는데. 다음 시즌 구상은 어떻게 하나

    국내 멤버는 변화 없이 기량 개발에 집중할 생각이다. 그래도 선수들이 우승을 통해 자신감은 갖췄으니, 실력과 기량을 채워주는 것이 핵심이다. 김선형-안영준-최준용 1-2-3번 포지셔닝을 확실하게 하고, 안영준도 작년에 못했던 체력 비축을 비시즌 동안 부지런히 해야한다. 또 신인 최성원도 약속한 목표를 채우면 기회를 줄 생각이다.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애런 헤인즈가 부상을 당했는데, 대체 선수 제임스 메이스가 맹활약을 했다.

    사실 헤인즈를 대체할 만한 외국인 선수는 없다. (헤임즈가)부상을 당하고 나서, 테리코 화이트를 '에이스'로 돌리고, 국내 선수들로 승부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크고 특징있는 선수, 리바운드만 안뺏길 선수를 찾았다. 원래는 지금 러시아리그 득점 1위를 달리는 선수가 후보였다. 2m 정도 되고, 인사이드는 메이스랑 비슷한데 조금 더 견고하다. 그런데 러시아리그에서 몸값이 많이 올랐고, 마침 우리가 콜을 보냈을 때 미국집에 돌아간 지 하루밖에 안됐을 때였다. 그래서 거절했다. 사실 나도 결과론이 아니라, 그 친구보다 메이스를 원했다. KBL 경력 때문이다. 다행히 중국리그가 한달 전에 끝나 쉬고 있던 메이스가 흔쾌히 오겠다고 해 성사가 됐다.

    -다음 시즌 외국인 구상은 역시 헤인즈가 중심인가.

    헤인즈의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80% 이상만 돼도 분명히 다른 팀에서 데려갈 선수다. 일단은 내 스타일에 잘 맞는 선수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단신 선수는 득점력이 강한 2번(포인트 가드)을 생각하고 있다. 사실 팬들이 '문애런'이라 부르는 것을 알고있다. 상처도 많이 받았다. 나는 처음부터 드롭존을 잘서고, 외곽 수비까지 되는 헤인즈를 뽑아온 것이 아니다. SK에 데리고 와서 가르치고, 스타일을 바꿔놓았다. 헤인즈가 편할 수 있는 패턴 5개를 만들어서 해보고, 그 중 3개를 골라 적용했다. 헤인즈도 단점이 많다. 1대1 수비 안되고, 리바운드 싸움도 부족하다. 장점은 승부욕인데, 이를 살려주고 단점을 가리는 역할이 필요하다. 난 대단한 감독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헤인즈를 가장 잘 활용한다는 소리는 들을 수 있다.

    -스타 출신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잘 안되는 선수들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도 '스타 출신은 안돼'라는 편견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선수가 마냥 답답하기만 하다면 지금까지 감독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로 가야한다. 그래야 대화가 된다. 선수가 이상하면 코치들에게 먼저 물어보고 확인을 한다. 또 선수들과 친한 매니저를 불러 사적으로 고민이 있는지를 파악한다. 그러고 나서 선수를 부른다. 오자마자 "너 요즘 왜그래?"라고 말하면 대답을 안한다. "가족들은 잘있지? 애들은 잘 크니?"라고 하면서 시작해야 술술 고민을 얘기한다. 보통 선수들은 아픈 것을 숨기려고 한다. 출전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면 티가 난다. 그러면 선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집스럽게 뛰면 더 마이너스다. 내가 이 정도의 출전 시간을 보장해주고, 실수 한번 해도 안뺄테니 아프면 언제든지 사인을 주라"고 먼저 말하면, "사실은 지난주부터 발목이 아팠는데…"라며 얘기를 꺼낸다. 관심과 신뢰, 소통이 중요하다.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문제가 있을 때 "너는 SK를 위해서 뛰냐? 거짓말하지 말아라. 돈벌려고 하는 거 아니냐? 가족들 먹여살리고, 네 이름 위해서 뛰잖아. 돈 벌게 해줄테니까 내 말들어"라고 하면 그게 더 무섭다. 사실은 귀찮다.(웃음) 그게 감독의 할 일이다.

    서울 SK 김선형(왼쪽부터), 문경은 감독, 전희철 코치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8.05.03/

    -챔피언결정전의 '숨은 MVP'로 최원혁, 이현석을 꼽았는데.

    사실 주전 위주로 훈련을 하다보면 이 선수들에게 할애할 시간이 없다. 원혁이는 김선형과 같은 포지션이다. 만약 월요일 훈련 때 김선형에게 '이러이러한 것은 하지마'라고 시키면, 그 주 주말에 원혁이를 시켜봤는데 선형이에게 하지 말라고 한 부분을 안한다. 이미 완벽히 숙지하고 있다. 밖에서 구경만 하고, 연습도 안해봤는데 계속 집중해 보고있다는 뜻이다. 현석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경기 중간에 언제든지 쓸 수 있다. 또 보여주려고 연습하지 않는다. 그 친구들이 열심히 하는 것을 왜 모르겠나. 농구단에 스태프가 선수단만큼 많이 있는데. 정말 안 예뻐할 수 없고, 기회를 안 줄 수가 없다. 김선형도 마찬가지다. 선형이는 계속 밀어주고 싶고, 키워주고 싶다. 그만큼 자리 잡았으면 비시즌 때 편하게 쉴 수도 있을텐데 체력 훈련을 하면 항상 1,2등이다. 후배들에게 창피한 모습을 보이기 싫으니까. 안 좋아할 수가 없다. 이 친구들과 오래 함께하고 싶다.

    -옆을 지키고 있는 전희철 코치의 존재는 얼마나 힘이 되나.

    엄청난 힘이 된다. 알고 지낸 지 30년이 넘은 사이다. 감독은 외로운 자리다. 가장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전희철 코치다. 늘 다른 코치들의 의견을 수렴해주고, 본인의 생각을 정리해 얘기를 해 준다. 그러면서 내 선택을 존중해준다. 자기 생각과 설령 다르더라도, '감독님이 맞을 수도 있다'며 힘을 실어주는 친구라 의지가 많이 된다. 사실 우승을 하고 나니 다른 분들이 '전희철 코치도 감독을 하시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사실 극단적으로 좋게 될 수 없지만. 그래도 쿨하게 보내줄 수 있다. 본인이 생각해보고 좋은 대우를 받는다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재학 감독이 지난 시즌에 사상 최초로 통산 600승을 돌파했다.

    유재학 감독님께 축하 인사를 드렸다. 1년에 30승씩 20년을 해야 600승이다. 30승을 하면 보통 4위 안에 든다.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할 수 있는 승수인데, 20년을 하다니. 3년 재계약 하기도 힘든 세상에 엄청나다. 아마 내 3점슛 1669개 기록만큼 깨지기 힘들지 않을까.(웃음)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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