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인터뷰] 마지막 시즌 이승엽 "야구, 정말 잘하고 싶었다"

    기사입력 2017-03-18 19:22:10 | 최종수정 2017-03-21 08:33:25

    삼성 이승엽 창간 27주념 특집 인터뷰 대구=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7.03.16.
    스포츠조선은 1990년 창간 후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과 동고동락했다. 이제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전설의 스타와 작별을 고해야 한다. 삼성 라이온즈의 '라이온 킹' 이승엽(41). 프로 23번째 시즌을 맞은 이승엽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 창간 27주년을 맞은 스포츠조선이 그의 혼이 영원이 남겨질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이승엽을 만났다. 그는 "20년이 넘는 시간, 오직 야구만을 위해 튀지 않고 최선을 다한 선수로 기억해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스포츠조선과 이승엽

    -창간 27주년 스포츠조선, 프로 23년차 이승엽.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어릴 적부터, 내가 잘할 때나 못할 때나 스포츠조선은 한결같이 나를 칭찬해주고 응원해주셨다. 프로 선수도 사람이기에, 나쁜 기사보다 좋은 기사를 자주 써주는 신문에 눈이 가기 마련 아닐까.(웃음) 그래서 스포츠조선은 나에게 아주 좋은 기억이 많다. 요즘도 항상 기사를 잘 챙겨보고 있다.

    -스포츠조선과 특별한 기억이나 에피소드가 있나.

    ▶사실 이름이 알려지고 나서는 정말 수많은 인터뷰를 했다. 나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프로에 갓 들어온 스무살 때, 그 때 기억이 지금까지 가장 행복하게 남아있다. 신인 때는 대구 지역 신문에 내 기사가 나와도 기분좋았는데, 전국구 신문인 스포츠조선에 처음 기사가 나왔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아기 사자' '라이온 킹' 이런 별명들이 붙으니 너무 신기했다. 처음 낯선 일본 무대에 갔을 때도 그랬다.

    -첫 기사를 기억하나.

    ▶정확히 기억한다. '20문 20답'으로 기억한다.(스포츠조선은 신인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특집 인터뷰를 했는데, 1995년 시즌 첫 주인공이 이승엽이었다.) 신인 때는 인터뷰할 일이 거의 없어 특별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기사는 어렸을 때 한 인터뷰다. 가끔 그 때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고 추억에 잠기곤 한다.

    -프로 선수와 언론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린 선수들이 명심해야할 게 하나 있다. 프로 선수라면 모두 스타가 되는 게 목표 아닌가. 스타가 되려면 언론 도움을 받아야 한다. 물론 선수는 실력이 제일 먼저다. 하지만 실력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면, 팬들이 선수를 제대로 알 수 없다. 나는 언론의 수혜자라고 항상 생각하며 야구를 했다. 1990년대 후반 IMF 시절에 내 야구를 보며 국민들께서 즐거움을 찾으시며 더 크게 성장했고,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사실 당시엔 '과연 내가 이정도 관심을 받아도 되는 선수인가'라는 의구심을 품은 적도 있다. 그런데 언론에서 계속 관심을 가져주니 의구심이 점점 자신감으로 변했다. 나도 모르게 '이승엽은 이정도 성적은 가뿐히 낼 수 있는 선수라고 봐주시는구나'라고 생각하니 힘이 나더라. 주변의 관심이 귀찮다기 보다는,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됐다. 이게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을 준 것 같다.

    삼성 이승엽 창간 27주념 특집 인터뷰 대구=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7.03.16.
    ◇국가대표와 이승엽

    -영원한 국가대표 이승엽이 본 이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어땠나.

    ▶홈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 많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후배들이 많은 비판을 받는 것도 안쓰러웠다. 결과를 떠나,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대충 경기를 한 선수는 없었을 것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최선을 다했을 것으로 믿는다. 국가대표에 대한 자부심, 절박함 부족에 대해 비판하는데, 선수이기에 이런 말에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 중요한 경기를 대충 뛴 선수는 절대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믿고 싶다. 만약, 그런 선수가 있었다면 그 선수는 야구 선수가 아니다.

    -앞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라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국제대회 성적이 나면 야구 흥행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어린 프로 후배나 아마추어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특히, 국제대회는 성적에 대한 부담이 큰 데, 오히려 그 걸 덜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적을 내고, 못내고를 떠나 강한 팀이 이기고 약한 팀이 지는 게 스포츠다. 국민들도 실력 차이가 확연히 나는데, 무조건 이기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는 것도 중요하다. 지더라도 프로다운 모습을 보이며 져야 한다. 물론, 이는 프로이기 때문에 절대 질 수 없는 마음가짐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자카르타아시안게임, 프리미어 12, 도쿄올림픽 등 중요한 국제대회가 많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선수들이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

    삼성 이승엽 창간 27주념 특집 인터뷰 대구=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7.03.16.
    ◇삼성, 대구와 이승엽

    -이승엽에게 삼성 라이온즈, 대구는 어떤 의미인가.

    ▶삼성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프로 선수가 고향팀에 입단할 수 있다는 것도 참 큰 행운인 것 같다. 그동안 삼성에 계셨던 모든 분들과 대구팬들 덕분에 누구보다 행복한 선수 생활을 했다. 특히, 일본 생활을 마치고 돌아올 때 삼성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자체에 감사했다. 사실 부모님이 대구에 정착하셔서 나를 낳았지만, 부모님의 고향은 전라도다. 지금은 많이 희미해졌지만, 오래 전에는 영-호남 문화 차이가 조금 있지 않았나. 나는 부모님을 보고, 또 대구에서 자라며 양 지역의 좋은 점들을 다 흡수할 수 있었다. 그게 프로 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야구 뿐 아니라 여러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프로 선수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이승엽이 대구에서 국회의원 출마하면 무조건 당선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정치는 잘 몰라서….(웃음)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다카하시 요시노부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을 만났는데,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다.(다카하시 감독은 1976년생인 이승엽보다 한살이 많다. 이승엽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요미우리에서 뛰던 시절 주축선수로 함께 했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구나 느꼈다. 처음 만난 것도 10년이 넘었다. 다카하시는 은퇴를 하고 지도자 생활을 하는데, 나는 아직도 야구를 하고 있으니 묘한 기분도 든다.

    -다카하시 감독처럼 삼성의 감독이 되는 꿈을 꾸지는 않는지.

    ▶그건 선수 생활을 확실히 마무리 짓고 난 뒤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그게 예의다. 내 미래에 대해 함부로 언급하는 것은 많은 분들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인 것 같다. 지금은 1년 남은 선수 생활에만 모든 집중을 하고 싶다. 은퇴를 하면 내 미래에 대해 결정해 말씀드리겠다.

    삼성 이승엽 창간 27주념 특집 인터뷰 대구=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7.03.16.
    ◇은퇴와 이승엽

    -KBO리그 최초로 은퇴 투어가 구체화되고 있다. 아쉬움 속에서 설렘이 있을 것 같다.

    ▶아직도 그 상황이 와닿지 않는다. 그런(은퇴 투어) 얘기가 나오는 자체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다. 라이벌 팀 선수가 은퇴를 한다고, 상대 코칭스태프-선수-팬들께서 배려를 해주신다는 건 프로 세계에선 참 과분한 일이다. 내가 그런 배려를 받는 첫 선수가 된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가족들은 은퇴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하는지.

    ▶집에서는 야구 얘기를 절대 안한다. 야구에 대해서는 내가 생각하고 결정하면 그걸로 끝이다. 나를 많이 이해해주는 것이기에 항상 고맙다. 그래도 이제 큰 아들이 커서 아빠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인지 안다. 둘째는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들에게 아빠가 이런 야구 선수였다는 걸 보여주고 은퇴할 수 있어 감사하다.(이승엽은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다. 첫째 은혁군이 12세, 둘째 은엽군이 6세다)

    -먼저 은퇴한 양준혁은 마지막 은퇴 경기에서 '전력질주'를 했다. 그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이승엽은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나는 항상 야구가 먼저였다. 야구를 정말 잘하고 싶었다. 20년이 넘는 시간, 오직 야구만을 위해 튀지 않고 최선을 다한 선수로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대구=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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