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이렇게 잡는거야, 고승범의 '인생경기'가 주는 메시지

2020-01-13 05:30:50

10일 수원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2019 FA컵 결승전에서 MVP를 차지한 수원 삼성 고승범이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수원=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9.11.10/

[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2019년 11월10일 FA컵 결승 2차전은 고승범(26·수원 삼성)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인생경기'다. 대전 코레일과의 맞대결에서 깜짝 선발출전해 멀티골을 터뜨렸다. '실패한 시즌'으로 남을 수도 있었던 수원에 FA컵 우승과 함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을 안겼다. 그 한 경기 반짝 활약으로 MVP라는 값진 선물을 받았다.



혹자는 '로또를 맞았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네'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사실은 한푼 두푼 넣은 적금이 만기가 돼 목돈을 손에 넣은 개념이라고 보는 게 맞다. 새해가 되기 전 가졌던 인터뷰에서 직접 건네들은 이야기에서 받은 느낌이다. '단 한 번의 기회' '인생경기'를 위해 발버둥 치는 이들이 들으면 좋을 이야기.

▶기회는 준비된 자, 간절한 자에게 찾아오는 법
고승범은 서정원 전 감독이 이끌던 2016년 수원 삼성에 입단해 프로 2년차 때인 2017년 소위 '대박'을 쳤다. K리그에서 33경기에 출전했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모든 경기에 나서며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측면 수비수와 중앙 미드필더를 모두 소화할 수 있고, 엄청난 활동량을 장착한 '살림꾼'. 그의 수식어였다. 하지만 2018년 돌연 대구FC로 임대를 떠난 고승범은 그곳에서 부상 등의 이유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1년 뒤 돌아온 수원은 감독이 서정원에서 이임생으로 바뀌어 있었다. 프로 4년차. 다시 경쟁을 시작해야 했다.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3월9일 전북 현대전 이후 4개월 넘게 공식전에 나서지 못했다. 이임생 감독 플랜에서 배제된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고승범은 "지칠 정도로 많이 뛴 적도 있었고, 기회를 잡지 못한 적도 있었다. 선수가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 괜스레 눈치가 보이고, 자신감이 떨어진다"며 "하지만 대구로 임대를 떠나선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 포기도 해봤다. 그때 생각이 나서 더 악착같이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타율이 떨어진 야구 타자가 스윙 폼을 바꾸듯, 고승범도 여름 기간 내내 피지컬 코치의 지도하에 웨이트 트레이닝 방법을 바꾸었다. 한 발 더 빨리, 한 발 더 많이 뛰어야 하는 미드필더에게 중요한 스피드가 향상되는 걸 느꼈다. 훈련을 마치고는 같은 팀 절친 한의권과 함께 슈팅 훈련을 했다. 슈팅 스타일이 다른 둘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부족한 점을 채워나갔다. '기회가 오기만 해봐라.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터이니'. 고승범의 머릿속을 채운 생각이었다.
▶감독의 믿음은 후보선수를 춤추게 한다

이임생 감독은 지난시즌 수 차례 고승범을 감독실로 불렀다. "모든 선수들이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경험이 많은 선수에게 먼저 기회를 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6강에 실패했다. 이제 너한테 기회를 줄 것이다"라고 말해줬다. 실제로 경남전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출전 기회가 찾아왔다. 그때마다 팀 중원의 엔진 역할을 잘 소화했다. 주전 미드필더이자 부주장인 최성근이 FA컵 결승 2차전에서 뛸 수 없게 되자 기존에 활용하던 백업 미드필더가 아닌 4~5 옵션 쯤 되는 고승범을 택했다. 고승범은 "지금 마음은 어떠냐.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냐를 물어보셨다. 항상 내 생각을 해주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독실에 들어가지 않은 선수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승전 2차전에서 이 감독과 수원 직원들이 기대한 것 이상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고승범은 "'결과'가 달린 경기에서 저를 선택하기 쉽지 않았을 것인데, 믿고 투입해주셨다. 갑작스럽게 투입됐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여름부터 차근차근 다시 준비를 했기 때문에 자신감은 있었다. 모든 타이밍이 잘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경기를 마치고 고승범이 주전으로 올라올 기회를 본인 스스로 잡았다며 반색했다. 실제로 다음시즌 주력으로 활용할 생각을 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패스마스터 김두현 코치라는 최고의 과외선생을 얻게 된 고승범은 "학창시절부터 슈팅과 활동량이 강점이었다. 지금은 프렌키 데 용(바르셀로나)과 같이 중원에서 공을 뿌려주는 역할에도 재미를 붙였다. 공격과 수비, 그리고 패스를 모두 잘하는 미드필더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라며 '인생경기'를 넘어선 '인생시즌'을 고대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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