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고 차부터 팔려던' KGC 박형철의 인생 역전드라마

2019-12-29 13:38:54

◇안양 KGC 슈터 박형철이 28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서울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상대 수비를 뚤고 외곽슛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제공=KBL

[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마감은 다가오는데, 연락은 없고. '차부터 팔아야겠구나' 생각하고 있었죠."



시즌 중반으로 접어든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에서 안양 KGC가 저력을 뿜어내고 있다. 2라운드부터 점점 치고 올라오더니, 3라운드부터 완전히 상위권으로 자리를 굳혀가는 분위기다. 3라운드를 마친 현재 KGC는 17승10패로 1위 서울 SK를 1.5경기차로 추격하는 공동 2위 자리에 올라 있다. 김승기 감독이 추구하는 강력한 로테이션 수비를 기반으로 한 농구가 활짝 피어났다.

하지만 수비 하나만으로는 승리를 따낼 수 없다. 효과적인 공격이 뒷받침 돼야 한다. 그 역할을 해주고 있는 선수들이 여럿 있는데, 현재 가장 알찬 활약을 펼치고 있는 인물이 바로 박형철이다. 지난 28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서울 삼성을 상대로 치른 올해 마지막 홈경기에서도 박형철은 건실한 활약으로 팀의 81대80, 짜릿한 1점차 승리에 기여했다.
팀의 핵심 선수 중 하나인 변준형이 이틀 전 창원 LG전에서 오른쪽 손목 골절로 빠지는 악재를 딛고 KGC가 뒷심을 발휘했던 핵심 요인이었다. 이날 박형철은 29분 51초 동안 3점슛 5개를 터트리며 15득점, 2리바운드 1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박형철의 야투 지원사격이 아니었다면 이날의 승리는 불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팀을 살린 활약이었다.

박형철의 이런 활약은 사실 알고보면 개인적인 독기와 함께 팀과 김승기 감독에 대한 '보은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은퇴를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갖고 있던 차부터 팔려는 생각을 하던 박형철에게 '현역 연장'의 동앗줄을 내려준 게 바로 KGC와 김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형철은 "김승기 감독님과 KGC는 내게 은인이다.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의 인연이 시작된 때는 2018년 5월 21일. 시즌 종료 후 FA가 된 박형철은 원 소속팀인 울산 현대모비스와 재계약 협상이 15일 최종 무산됐다. 이후 박형철은 타 구단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FA 영입의향서 제출 마감일인 21일까지도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박형철은 당시를 떠올리며 "집에 앉아서 시계와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다. 저녁 6시가 마감인데, 5시 30분까지도 전화가 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미 그 시점에 박형철은 마음을 굳혀가고 있었다. '이렇게 은퇴하겠구나.' 이후에 무슨 일을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않았다고 한다.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앞서는 가운데에도 일단 차부터 팔아서 잠시동안 '백수 생활(?)'을 버텨야겠다는 매우 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오후 5시40분 쯤. 갑자기 휴대전화가 떨렸다. 굳어가던 박형철의 마음도 함께 떨리고 있었다. '함께 해보자'는 KGC 구단의 메시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박형철의 가치를 김승기 감독이 알아본 결과였다. KGC도 어렵게 한 연락이었다. LG시절 박형철을 프로 지명한 인연이 있던 김성기 KGC 사무국장은 박형철이 FA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현대모비스 구단 측에 조심스레 문의했다. 박형철의 몸에 문제가 있는지. 또 혹시라도 나올지 모르는 사전접촉 시비를 의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문제도 없음을 확인하고 박형철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었다.

이때부터 박형철의 농구 인생은 다시 시작됐다. 지난 시즌 조금씩 출전 시간을 늘리며 김 감독의 스타일에 적응한 박형철은 이번 시즌 드디어 팀의 주전급 슈터로 도약했다.

무사는 자신을 알아 준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한다. 비록 박형철이 무사는 아니지만, 이미 그의 마음에는 헌신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할 '주군'이 명확히 각인 돼 있는 듯 하다. 그가 이번 시즌 한층 더 좋은 활약을 펼치게 된 이유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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