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탄생 110주년 맞은 플라스틱의 역습

2019-12-05 07:49:43

바다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쓰레기로 만든 '고래 조각상'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국회의사당 앞에 전시돼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플라스틱에 의한 해양 오염에 항의하기 위해 만들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현재 인류는 석기, 청동기, 철기를 거쳐 플라스틱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한다. 조물주가 세상 만물을 창조할 때 유일하게 빼먹은 물질이 플라스틱이라는 우스개도 있다. 7일은 리오 베이클랜드가 최초의 인공 합성수지 베이클라이트의 특허를 획득한 지 110주년 되는 날이다.
인공 합성수지의 별칭인 플라스틱은 '아무 모양이나 만들 수 있다'는 뜻의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유래했다. 열이나 압력을 가해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튼튼하고 가볍고 색깔도 마음대로 낼 수 있어 20세기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란 찬사를 받았다.





앞서 150년 전 천연 재료를 이용한 플라스틱의 원조가 등장했다. 19세기 중반 미국 상류사회에서는 당구가 유행했는데, 코끼리 수가 급감해 당구공 재료인 상아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1863년 당구공 제조업자들은 1만 달러의 상금을 내걸고 상아 대용품을 공모했다.
미국의 존 하이엇은 1869년 면화에 질산과 유기용제를 섞어 셀룰로이드를 개발한 뒤 이듬해 특허를 받았다. 그러나 셀룰로이드는 쉽게 폭발하는 단점이 있어 당구공 재료로 쓰이지는 못했다. 대신에 장난감, 영화 필름, 틀니, 만년필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 셀룰로이드는 식물 세포막을 이루는 셀룰로오스가 원료여서 인공 합성수지로 볼 수는 없다.


1863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켄트대 교수로 재직하던 베이클랜드는 1889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사진 인화지 등을 생산하는 회사에 입사했다가 2년 만에 퇴직하고 개인 연구를 시작했다. 햇빛을 쪼여야 하는 감광지 대신 인공 빛으로도 인화할 수 있는 벨록스 인화지를 개발한 뒤 이스트먼 코닥사에 넘겨 100만 달러를 받았다.

그는 기존에 쓰던 절연체의 대체 물질을 연구하던 중 독일의 화학자 아돌프 폰 바이어가 쓴 논문을 보고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반응시키면 나뭇진(수지)과 비슷한 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5년간 이 실험에 매달린 끝에 1907년 신물질 개발에 성공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베이클라이트라고 명명했다.
베이클라이트는 썩지도 녹지도 않고 절연성까지 뛰어나 당시 급속도로 보급되던 전기 제품 재료로 안성맞춤이었다. 호박 대신 목걸이·팔찌·브로치 등 장신구로 활용되고 고급 화장품 용기나 빚 등 여성용품 재료로도 쓰였다. 그는 1910년 나이아가라폭포 근처에 공장을 세웠는데, 큼지막한 글씨로 내건 광고 문구는 '천 가지 용도의 물질'이었다. 이후에도 100여 개의 특허를 출원해 부를 쌓았다가 1944년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세상을 떠났다.

1922년 독일의 화학자 헤르만 슈타우딩거는 플라스틱이 수천 개의 분자 사슬로 구성된 고분자 화합물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계기로 플라스틱의 수많은 변종이 속속 세상에 나왔다. 1920년대 중후반 폴리스티렌(PS)과 폴리염화비닐(PVC), 1933년 폴리에틸렌(PE), 1937년 나일론, 1941년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 1956년 폴리카보네이트(PC), 1959년 발포폴리스티렌(EPS·일명 스티로폼), 1987년 폴리아세틸렌 등이 잇따라 발명됐다.

용도가 무한대로 확장돼 플라스틱 제품이 넘쳐나자 썩지 않는다는 장점은 치명적인 결함이 됐다. 태우면 독성물질을 내뿜고 땅에 묻으면 지하수와 토양을 오염시키니 골칫덩이가 됐다. 물질 혁명을 가져온 시대의 총아에서 탄생 1세기 만에 인류의 재앙을 가져올 괴물로 전락한 것이다.


지난달 30일 스코틀랜드 해안에서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삼킨 채 죽은 향유고래가 발견돼 충격을 주었다. '스코틀랜드 해변 해양동물 대응계획'(SMASS)이 페이스북으로 공개한 영상. [https://youtu.be/3QWcKZpTjk0]
지난 달 30일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해안에서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삼킨 채 죽은 향유고래가 발견됐다. '스코틀랜드 해변 해양동물 대응계획'(SMASS) 단원들이 향유고래의 몸을 가르자 위에서 100㎏에 달하는 쓰레기가 쏟아져나왔다. 밧줄, 그물, 컵, 포장용 끈, 가방, 장갑 등 대부분 플라스틱 제품이었다.
해마다 1천200만 마리가 넘는 바닷새와 10만 마리 이상의 해양 포유류가 바다에 마구 버린 플라스틱 때문에 죽는다고 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바다에서 잡은 새우 10마리 중 7마리꼴로 몸속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나왔다. 미세 플라스틱은 새우뿐만 아니라 굴, 홍합, 생선 등 해산물로도 인체에 유입된다. 학자들은 사람이 섭취한 미세 플라스틱이 환경호르몬과 같은 화학적 독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오염물질을 옮길 수 있고 세포에 물리적 자극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이 폐플라스틱 수입을 중단하자 국내 폐기물 수출업자들이 2017년 12월부터 1년간 재활용할 수 없는 폐플라스틱 1만6천여t을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했다가 현지인의 항의를 받고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한 일도 있었다.

3월에는 미국 CNN이 경북 의성에 방치된 높이 23m, 무게 17만t의 쓰레기산을 집중보도해 낯을 뜨겁게 했다.
통계청 발표나 유럽플라스틱제조자협회의 보고 등을 종합하면 우리나라의 플라스틱 소비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폐기물 발생량은 최근 10년 사이 15.3% 증가했으나 같은 기간 폐기물 소각시설은 58.5% 줄었다. 폐기물 매립지도 대부분 포화 상태에 가깝다.


정부는 지난해 5월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해 2022년까지 일회용 컵과 비닐봉지 사용량을 지금보다 35%, 2030년까지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량을 50% 각각 줄이기로 했다. 환경부는 2022년까지 일회용품 사용량을 35% 이상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는 중장기 단계별 계획을 지난달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 일본, 유럽 등에 비하면 우리의 사정이 훨씬 다급한데도 감축 속도가 더뎌 보인다.
지난해 8월 커피숍 매장 내에서 일회용 컵이 금지된 데 이어 올 1월부터 대형마트에서 일회용 비닐봉지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한때 플라스틱 사용을 최소화하는 캠페인이 붐을 이루기도 했으나 금세 시들해진 느낌이다. 탄생 110주년을 맞은 플라스틱이 인류의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변하지 않도록 절제의 미덕과 재활용의 지혜를 발휘할 때다. 향유고래가 온몸으로 증언한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한민족센터 고문)

heeyong@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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