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3일까지 방 빼!' 여축명가 화천정산고 우승 직후 받은 해체문자

2019-12-02 08:42:44



"화천정산고는 한국 여자축구에서 정말 없어서는 안될 팀이에요. 여자축구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꼭 우리 팀이 해체되지 않게 도와주세요."



28일 오후 2019년 학교체육대상 시상식 현장에서 만난 화천정보산업고 '수비 에이스' 김예은(16)의 목소리에선 간절함이 묻어났다.

'해체 위기의 여자축구 명가' 화천정보산업고는 이날 학교체육대상 시상식에서 '대한축구협회 후원' 여학생축구 활성화 고등부 부문 상을 수상했다. 전국의 여자축구 고등부, 스포츠클럽을 통틀어 최고, 최강의 학교로 공인받았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직접 시상에 나서 축구소녀들의 열정을 응원했다.

김유미 감독이 이끌어온 화천정산고의 올시즌은 화려했다. 전국여자축구선수권, 한국여자축구추계연맹전에서 잇달아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춘계연맹전, 여왕기 대회에선 준우승했다. 전국체전에선 3위에 올랐다. 4번의 전국대회에서 우승 2회, 준우승 2회의 눈부신 성과를 거뒀고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4강에 올랐다. 2005년 팀 창단 이후 최고의 성적이었다. 지난 7월 여자축구선수권 직전 학교장으로부터 축구부 해체 1차 공지가 떨어졌다. 김 감독은 선수들을 다독였고, 선수로서 해야할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이후 나선 모든 대회에서 우승했다. 김예은은 "팀이 힘든 상황일수록 우리가 더 잘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노력한 결과"라고 했다. 그러나 이날 학교체육대상 고등부 상을 받고도 축구소녀들의 표정은 마냥 환하지만은 않았다.

시상식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 20일 학교측은 화천정보산업고등학교장 명의로 학부모들에게 일괄문자를 발송했다. '우리학교는 지난 7월 운영위원회 결정에 따라 2020년 2월29일까지 축구부를 운영하고 해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월3일까지 기숙사에서 개인용품을 반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문자였다. 해체 의지를 재천명했다. 4명의 아이들이 전학을 결정했고 1학년 신입생도 받지 못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이날 대상은 화천정산고 지도자 및 선수들의 분투와 여자축구를 향한 작은 선물이자 위로였다.

강인한 리더십으로 화천정산고 전성시대를 연 김유미 감독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최선을 다해 앞만 보고 달려온 이 아이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2005년 창단돼 14년간 여자축구의 역사를 써온 학교다. 강일여고가 해체된 이후 강원도 유일의 여자축구 학교로 명맥을 이어왔다"고 했다. "성적도 물론 중요하지만 나역시 선수 출신인 탓에 성적만 강요하지 않았다.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며 좋은 축구, 새로운 축구를 시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화천군, 부대의 지원 등 인프라면에서도 나무랄 데 없었다"고 돌아봤다. "우리학교가 없어지면 다른 학교들도 도미노처럼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가뜩이나 열악한 여자축구 저변에 악영향을 끼칠까봐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감독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많은 분,힘 있는 분들의 응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자축구 등록선수가 1400여 명에 불과한 상황, 대한축구협회는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교육부와 함께 초중고 여자축구 활성화 부문 대상을 후원했다. 여자축구 활성화 대상을 수상한,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여자축구팀이 해체 위기를 맞고 있다. 결국 상처는 축구를 사랑하는 아이들의 몫이다.

지난 19일 강원도 의회 교육위원회 김준섭 의원은 "관련 조례에 따르면 교직원, 선수,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하지만 확인 결과 이 과정이 누락됐다"고 밝혔다. "학부모 학생의 동의없는 화천정산고 축구부 해체 과정에 대한 감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원도 교육청은 "절차상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감사절차를 검토하고 필요시 감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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