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빠꾸'부터 FA컵 V5까지, 해피엔딩으로 끝난 이임생의 1년

2019-11-11 05:20:00

10일 수원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2019 FA컵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수원 삼성 이임생 감독이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수원=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9.11.10/

[수원=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1대2, 0대4, 1대2…, 3연패.



10일 빅버드에서 FA컵 최다우승의 영예를 안은 '이임생호'의 출발은 불안하기만 했다. 시즌 전 수원 삼성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임생 감독은 동계훈련 때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강한 전방압박 전술을 팀에 입히려고 노력했다. 유스 선수들을 육성하길 바라는 구단의 의중에 따라 새로운 얼굴도 대거 준비시켰다.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으로 수원에서 오랜기간 코치를 지낸 이 감독은 미디어데이에서 디펜딩 챔피언 전북 현대의 대항마로 수원을 꼽으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현실은 냉혹했다. 시즌 초반 3연패를 당했다. 팬들은 경기 도중 이 감독이 선수들을 향해 '"가 무섭다고 자꾸 뒤로 가"라고 외치는 것을 듣고 돌아오지 않는 축구라는 뜻에서 신조어 '노빠꾸 축구'를 탄생시켰다. 이 감독은 현실을 직시했다. 포백에서 스리백으로 갈아탔다. 발이 느린 베테랑 공격수 데얀과 염기훈으로는 상대 수비진을 압박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K리그 데뷔전이었던 울산 현대전에서 데뷔골을 넣은 '한국형 공격수' 호주 출신 공격수 아담 타가트를 전면에 내세웠다.

수원은 4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타가트의 멀티골에 힘입어 시즌 첫 승을 따내며 분위기를 바꾸었다.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은 수비수들로 수비진을 교체했다. 공격적인 전방압박 대신 '안정'에 전술적 초점을 맞췄다. 한층 단단해진 수원은 3연패 이후 컵대회 포함, 10경기에서 단 1패만을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K리그 역대 최고의 외인 공격수란 평가를 받는 데얀이 출전시간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항명 논란을 일으켰지만, 득점선두로 올라선 타가트를 외면할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타가트 의존도가 높아져간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염기훈의 장기부상과 핵심 중앙 미드필더 사리치의 중동 이적, 그리고 의존도 높은 타가트와 5명의 수비수들의 체력 문제가 겹치면서 불안한 8~9월을 보냈다. K3리그 소속 화성FC와의 FA컵 준결승 1차전 원정에선 0대1의 충격패를 당했다.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은 이 감독은 "FA컵에서 결과를 내지 못할 경우 물러나겠다"고 깜짝 사퇴 발언을 했다. 경기장을 찾은 홈 서포터즈들은 내용과 결과가 좋지 않을 때면 어김없이 야유를 퍼부었다. 전력 외 선수로 전락한 데얀은 보란 듯 K리그 타구장에 얼굴을 드러내며 팀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수원은 K리그1 정규리그 최종전을 통해 결국 목표로 했던 파이널A 그룹 진입에 실패하며 전통명가의 체면을 구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FA컵 올인'을 선언한 상황에서 지난 6일 내셔널리그 소속 대전 코레일과의 FA컵 결승 1차전 원정에서 졸전 끝에 0대0으로 비기며 다시금 우려를 키웠다. 내셔널리그 선수들이 "해볼만 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수원 경기력 자체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감독과 주장 염기훈은 "2차전에서 승산이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10일 결승 2차전을 앞두고 만난 이 감독은 이미 한 번 코레일을 경험해봤다는 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수원은 전반 10여분 동안만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줬을 뿐, 프로팀다운 여유있는 플레이로 'KTX'급 속도로 프로팀들을 물리치고 결승까지 오른 코레일을 요리했다. 수원은 전반 15분 고승범의 깜짝 중거리 포로 기선을 제압했다. 고승범은 후반 23분, 이번엔 왼발로 골망을 흔들었다. 이 골은 코레일의 추격 의지를 꺾는 쐐기포였다.

수원 4년차인 고승범은 올해 K리그에서 8경기 출전에 그쳤다. 최성근 사리치(이적) 안토니스 김종우 등에 밀린 중앙 미드필더 5순위 쯤 됐다. 하지만 결승전 1차전에서 핵심 미드필더이자 부주장 최성근이 햄스트링을 다쳐 출전 기회를 잡았다. 이 감독은 "고승범의 활동량에 기대를 건다"고 말했는데, 활동량을 넘어 벼락같은 두 번의 중거리 슛으로 팀의 4대0 대승을 이끌었다. 지난해 대구FC로 임대를 떠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던 그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날 대회 최우수선수를 수상한 고승범에 대해 이 감독은 "나에게 안기러 달려올 때 베스트로 우뚝 설 수 있다는 게 느껴져 좋았다"고 말했다.

후반 32분 김민우의 추가골로 3-0으로 앞선 후반 40분 주장 염기훈은 전세진의 패스를 골로 연결하며 기어이 득점왕(5골)을 차지했다. FA컵 최다출전(31경기) 최다득점(10골) 등을 새롭게 경신하며 다시 한 번 'FA컵의 사나이'임을 입증했다. 2016년 이후 3년만에 이 대회에서 우승한 수원도 포항 스틸러스를 따돌리고 FA컵 최다 우승팀(5회)의 영예를 안았다. 이를 통해 다음년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본선 직행 티켓까지 거머쥐며 다사다난했던 한 시즌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했다.

이 감독은 "화성에서 그런 얘기를 했던 건 책임감을 선수들에게 돌리기보단 다 안고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며 "우승컵을 만든 데에는 선수들의 공로가 크다"고 우승의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그러면서 "다음시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나서는데, 구단에서 선수 보강 등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이야기했다.

한편, 내셔널리그의 이름을 걸고 사상 첫 우승에 도전했던 코레일은 '아름다운 패자'로 남았다. 김승희 감독은 "내셔널리그의 이름을 달고 뛰는 마지막 경기다.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축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속도를 내서 명문구단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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