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세계 비보잉 리더' 김헌준 "길을 만들어 가는 거잖아요"

2019-11-07 06:34:00

대한브레이킹경기연맹 김헌준 부회장. 부천=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9.11.05/

[부천=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저는 길을 만들어 가고 있는거잖아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비보잉을 이끄는 김헌준(34·스킴) 진조크루 단장이 허허 웃었다. 그 미소 뒤에는 세계 1등이 되기 위해 헤쳐 온 1만8000시간의 노력이 흐르고 있었다.

5일, 부천에 위치한 진조 댄스 스튜디오에서 김 단장과 마주했다. 그는 인사와 함께 두 장의 명함을 건넸다. 한 장에는 '진조크루 대표', 또 한 장에는 '대한브레이킹경기연맹 부회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여기에는 빠져 있지만, 그는 비보잉 공연을 기획하는 수퍼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의 대표이사기도 하다. 각기 다른 명함만 2~3개씩 들고 다니는 김 단장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친구 따라 비보잉, 우연이 만든 필연

밀레니엄을 정확히 1년 앞뒀던 지난 1999년. 김 대표는 '친구 따라' 춤바람이 났다. 중학교 2학년이던 김 대표는 '우리 춤 춰볼래'라는 친구의 말을 따라 비보잉에 입문했다.

"예쁘게 포장하면 '운명'이라고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운명적인 건 아니었어요. 그냥 '어쩌다보니'였죠. 처음에는 '비보잉이 뭐지' 생각할 정도였어요. 친구가 설명해줬는데, 영화 '닌자 거북이'이에 나오는 동작이더라고요. 그때 마침 만화 '힙합'을 보기도 했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때는 누구나 한 번쯤 비보잉을 했던 것 같아요. 이것저것 시도해볼 때잖아요. 그 중에 일부만 끝까지 비보잉을 한 거죠."

비보잉과의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동시에 '필연'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 집이 가난했어요. 친구들은 MP3 플레이어다 컴퓨터다 가지고 놀 게 많았죠. 저는 아니었어요. 돌이켜 보면 제가 다른 것에 신경을 쓸 것이 없고, 오직 춤만 출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 같아요."

열정은 연습 시간과 비례했다. "저도 처음에는 예선탈락을 많이 했어요. 국내 큰 대회에서는 우승하지 못했죠. 지난 2005년부터 5년 동안 매일 새벽 훈련을 했어요. 10시간씩요. 1년에 5일도 쉬지 않았죠. 주말도 명절도 없었어요. 그렇게 하니 성장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 과거에 후회는 없어요. 앞으로도 제 과거에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면 안 되니까 열심히 해야죠."

▶1만8000시간이 만든 왕관

360일 동안 10시간씩, 그렇게 5년. 총 1만8000시간을 건너 온 힘은 강했다. 김 단장과 진조크루는 10년 넘게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2012년에는 세계 최초로 5대 메이저 대회를 석권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 김 단장은 어느덧 서른 중반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하루에 공연이 여러 개 겹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저도 당연히 무대에 서죠. 그러나 지금은 후배들이 더 빛날 수 있도록 최대한 자리를 양보하는 편이에요."

분명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는 줄었다. 하지만 김 단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비보이로서 새 길을 열어가고 있다. 그는 댄서를 넘어 세계 대회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세계댄스스포츠연맹(WDSF) 내 설립 예정인 비보잉 분과의 위원으로 제안을 받기도 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비보잉 대회 'BBIC(부천세계비보이대회)'를 주관하고 있다.

"당연히 과거(무대)가 그립죠. 하지만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댄서로서, 댄서 출신으로서 해낼 수 있는 올바른 궤도가 아닌가 생각해요. 당연히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도 있죠. 그러나 내가 해야하는 일이고 나 밖에 할 수 없는 일이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즐거워요. 추억하기 좋은 과거는 많지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아요. 어쩌면 선배들이 포기했을 수도 있는 길을 저는 만들어 가고 있는거잖아요."

▶늦었지만, 어쩌면 늦지 않은 타이밍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 6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제134차 총회에서 비보잉을 2024년 파리올림픽 종목으로 잠정 승인했다. 지금 당장 올림픽이 열리면 대한민국은 금메달 후보 1순위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5년 뒤 일은 장담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비보잉 강국이죠. 동시에 비보이 불모지기도 해요. 올림픽에 나가면 메달이 중요하잖아요. 저 역시도 '성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실력이니까요. 세계 비보잉 시장이 무척 넓고, 중국과 일본 등은 후진 양성도 매우 체계적으로 잘 돼 있어요. 우리도 준비해야죠. 지금은 늦었지만, 어쩌면 늦지 않은 타이밍이니까요."

김 단장은 당장 눈앞은 물론이고 긴 호흡으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아들이 둘이에요. 큰 아들이 열살, 작은 아들이 여덟살이요. 몇 개월 전부터 비보잉을 가르치고 있어요. 하지만 무리는 하지 않죠. 단계가 있어요. 지금 해야 하는 동작, 몸에 근육이 더 붙어야 할 수 있는 동작 등으로요. 비보잉은 체계적으로 훈련만 하면 좋은 운동이 될 수 있어요. 우리 몸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쪽으로 바뀌거든요. 이런 내용들을 담은 지도서를 제작 중이에요. 어린 아이들이 체계적으로 따라할 수 있도록이요."

연습실 중앙에 붓글씨로 쓴 '실력'이란 단어가 걸려있었다. "실력이 없으면 그들만의 놀이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김 단장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부천=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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